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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이 기본이다 늦은 밤, 혼자 침대를 뒤척이던 와중 추천 재생목록에 있던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을 봤다. 극 중에서 최고의 스펙으로 입사한 장백기는 첫날부터 상사인 강대리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등 의욕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장백기에게 주어진 업무는 엑셀 정리다. 하지만 맡겨진 엑셀 업무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던 장백기는 강대리가 본인을 이유 없이 미워해 그런 업무만을 주는 것으로 오해하고 급기야는 강대리에게 날을 세운다. 장 : 제게 기본을 가르친다는 건 핑계일 뿐이고 그냥 저를 싫어하시는 걸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데요. 강 : (한숨) 이건 누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관점에서 당신을 판단할 만큼 당신을 알지도 못하고요. 스스로를 드러내고 돋보이고 싶은 의욕이 앞서면 조급 해지는.. 2020. 5. 24.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난 겨울, 한 언론사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난 한 기자님은 취재 자체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매일 글 쓰는 일이 루틴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조금 힘들다고 하셨다. 나는 매일 글로 남기고 싶은 일들을 경험 중이라 참 다행이자 행운이다. 화요일에는 처음으로 내가 케이스를 맡은 환자를 직접 보러 갔다. 환자분은 CML(만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병을 앓고 계신 분인데, 실습학생이라고 신분을 밝혔음에도 흔쾌하게 이것저것 대답도 잘해주시고 신체진찰에도 기꺼이 응해주셨다.(실습과정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케이스 발표는 해당 환자를 초진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쓰인다-처음 보았을 때 신체 소견, 검사 소견, 그로 인해 추정되는 진단, 그 진단들을 감별하기 위한 다른 검사들, 최종 진단을 포함하는 식이.. 2020. 5. 24.
언제쯤이면 익숙해질까요 응급실에 있던 2주 간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5일에 걸친 추석 연휴가 있다는 말 이면에는 어떤 뜻이 자리하는지 나는 몸으로 직접 겪을 수 있었다. 작년만 해도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유쾌하게 웃던 선배들은 이제는 인턴이 되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걸 지옥이라고 불렀다. 응급실은 그러니까, 생각과는 사뭇 다른 곳이었다. 꼭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내장이 으깨져야만 사람들이 응급실에 오는 건 아니다. 상처에서 피가 솟구치는 것은 차라리 살아있다는 반증일지니, 그렇지 않고서 생명의 빛이 서서히 꺼져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 심정지 상황은 응급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보통 하루에 1~2회에 있는 정도라고 한다. 물론 내 입장에선 흔치 않은 경험이다. 처음 CPR(심폐소.. 2020. 5. 22.
저널리뷰 : Quantifying sars-cov-2 transmission suggests epidemic control with digital contact tracing (코로나 19 관련) 2020년 5월 8일, Science에 실린 Research article입니다.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이런 방식이 잘 작동할지 의문입니다. 또한 Homogeneous한 사회에서는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Introduction •Until vaccines are widely available, effective prevention approaches are case isolation, contact tracing, quarantine, physical distancing, decontamination and hygiene measures. •Crucial importance to understand the routes and timings of trans.. 2020. 5. 22.
21세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005년 당시 전국 오직 한 곳에서만 개봉된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도입부는 은하계의 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철거되기 직전 지구로부터 지나가던 우주선에 히치하이킹을 얼떨결에 하게 된 한 주인공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이제 지구라는 고향을 잃은 우주 난민의 처지로 우주를 여기저기 불쌍하게 돌아다니며 여러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전에 책을 한 권 받는다. 책의 이름이 바로 영화 제목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며, 책의 표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DON'T PANIC. 일단, 겁내지 마세요 잘 모르면 용감해진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무지는 본질적으로 인간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전부터 자신이 잘 설명할 수 없는 분야에서도.. 2020. 4. 7.
'정의란 무엇인가' 짧게 읽기 정치. 신문에서 1면을 가장 크게 장식하고 내 생각에는 경제와 더불어 세상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축 중 하나이지만 왠지 딴 세상 이야기처럼 멀어 보인다. 작년 한 해는 일단 나에게 모든 면에서 아주 역동적이고 중요한 한 해였다. 대학병원의 임상현장을 멀리서 보면서 느낀 점이 가장 많았지만 그것 외에도 사회 전반적인 현상을 보면서 깨달은 게 많았다. 조국 사태와 그에 따라 극단적으로 나뉜 여론들이 기점이었다. 물론 이런 일들이 다른 정권에서도 비일비재했다는 것도 알지만 이번 일처럼 나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처음이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대체 정의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했다. 답을 찾아보려는 나름의 시도 중 하나로 마이클 샌댈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베스트셀러가 된 지 근 10년이 .. 2020.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