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생이 재미가 없나요 정신건강의학과(이하 정신과) 역시 다른 과들과 마찬가지로 실습 중 파견 일정이 있다. 찾아간 병원의 부원장님이 해주신, 기억에 오래 남은 수업내용으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정신의 뜻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용(中庸)에 따르면 '정'과 '신'은 쉽게 말해 각각 '기능'과 '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저기 의자도 정신이 있습니까? (일동침묵) 있죠. 의자도 사람을 앉히는 '기능'과 앉을 수 있는 모양의 '틀'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의자가 원래 기능과 틀에서 벗어나, 지진이 나지 않았는데도 움직이면 그때 정신이 나갔다, 귀신이 들렸다는 식으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일동 감탄) 의자의 정신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철학'입니다. 그중 주로 인간의 '정신'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 2020. 5. 24.
기본이 기본이다 늦은 밤, 혼자 침대를 뒤척이던 와중 추천 재생목록에 있던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을 봤다. 극 중에서 최고의 스펙으로 입사한 장백기는 첫날부터 상사인 강대리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등 의욕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장백기에게 주어진 업무는 엑셀 정리다. 하지만 맡겨진 엑셀 업무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던 장백기는 강대리가 본인을 이유 없이 미워해 그런 업무만을 주는 것으로 오해하고 급기야는 강대리에게 날을 세운다. 장 : 제게 기본을 가르친다는 건 핑계일 뿐이고 그냥 저를 싫어하시는 걸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데요. 강 : (한숨) 이건 누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관점에서 당신을 판단할 만큼 당신을 알지도 못하고요. 스스로를 드러내고 돋보이고 싶은 의욕이 앞서면 조급 해지는.. 2020. 5. 24.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난 겨울, 한 언론사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만난 한 기자님은 취재 자체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매일 글 쓰는 일이 루틴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조금 힘들다고 하셨다. 나는 매일 글로 남기고 싶은 일들을 경험 중이라 참 다행이자 행운이다. 화요일에는 처음으로 내가 케이스를 맡은 환자를 직접 보러 갔다. 환자분은 CML(만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병을 앓고 계신 분인데, 실습학생이라고 신분을 밝혔음에도 흔쾌하게 이것저것 대답도 잘해주시고 신체진찰에도 기꺼이 응해주셨다.(실습과정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케이스 발표는 해당 환자를 초진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 쓰인다-처음 보았을 때 신체 소견, 검사 소견, 그로 인해 추정되는 진단, 그 진단들을 감별하기 위한 다른 검사들, 최종 진단을 포함하는 식이.. 2020. 5. 24.
언제쯤이면 익숙해질까요 응급실에 있던 2주 간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5일에 걸친 추석 연휴가 있다는 말 이면에는 어떤 뜻이 자리하는지 나는 몸으로 직접 겪을 수 있었다. 작년만 해도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유쾌하게 웃던 선배들은 이제는 인턴이 되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걸 지옥이라고 불렀다. 응급실은 그러니까, 생각과는 사뭇 다른 곳이었다. 꼭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내장이 으깨져야만 사람들이 응급실에 오는 건 아니다. 상처에서 피가 솟구치는 것은 차라리 살아있다는 반증일지니, 그렇지 않고서 생명의 빛이 서서히 꺼져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 심정지 상황은 응급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보통 하루에 1~2회에 있는 정도라고 한다. 물론 내 입장에선 흔치 않은 경험이다. 처음 CPR(심폐소.. 2020.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