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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일기

인생이 재미가 없나요

by 절실한 사람 2020. 5. 24.

정신건강의학과(이하 정신과) 역시 다른 과들과 마찬가지로 실습 중 파견 일정이 있다. 찾아간 병원의 부원장님이 해주신, 기억에 오래 남은 수업내용으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정신의 뜻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용(中庸)에 따르면 '정'과 '신'은 쉽게 말해 각각 '기능'과 '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저기 의자도 정신이 있습니까? (일동침묵) 

 

있죠. 의자도 사람을 앉히는 '기능'과 앉을 수 있는 모양의 '틀'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의자가 원래 기능과 틀에서 벗어나, 지진이 나지 않았는데도 움직이면 그때 정신이 나갔다, 귀신이 들렸다는 식으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일동 감탄) 

 

의자의 정신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철학'입니다. 그중 주로 인간의 '정신'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정신의학'이고요.

 

진료를 보다 보면 나이 사십도 더 먹은, 좋은 집과 차를 가진 의사 선생님들도 '인생이 재미가 없다'며 찾아옵니다. 저는 이제 알았냐고, 원래 세상은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있을 겁니다. 이제까지 인생을 긍정적 보상만으로 살아오신 분들이요.

 

아기들을 잘 생각해보세요. 별 것 아닌 움직임에도 부모님들은 감동하며, 반복하기를 원합니다. 첫걸음을 뗄 때, 맘마 등을 말할 때가 있겠죠. 이러한 긍정적 보상들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줄어들기 시작해 종국에는 없어집니다. 긍정적 자극이 사라지는 거죠. 그때부터 인생이 급격히 재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나'를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하고, '나'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 우선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움직임을 계속하는 것이 삶에 의미부여를 해줍니다. 

 

삶은 재미있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삶으로 인해 재미있는 것입니다.

 


 

아마 일반인에게도, 그리고 아직 실습을 돌지 못한 의대생을 포함한 예비의료인에게도 정신과는 가장 궁금하면서도 쉽사리 다가가기 힘든 과 중 하나일 것이다. 본과 2학년 때도 느꼈지만, 다른 임상진료과목과는 그 성질이 매우 다르다. 가장 기억나는 차이는 바로 교과서다. 증례가 굉장히 중요하므로, 실제 임상 예시로 페이지가 빼곡하다. 영상자료로 환자를 설명하기에 한계가 있어 사진 대신에 글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실습은 보호병동에서 환자들과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모든 활동을 함께 하며 이루어진다. 전자 의무기록은 보호병동 외에서는 볼 수 없게 되어 있는 등 보안면에서도 더욱더 철저하다.

 

정신과는 뭔가 명확한 '답'이 없는 느낌이 있지만, 엄연히 의학의 한 줄기답게 논리적인 학문이다. 주로 신경전달물질 6개(Dopamine, Serotonin, GABA, Glutamate, Ach, Norepi)의 불균형으로 인해 여러 증상들이 나타난다(아래 참조). 환자들은 우울하다고 병원에 올 수도 있겠지만, 우울증의 증상인 불면, 식욕저하, 소화장애, 두통, 심장 두근거림 등의 신체 증상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오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지며, 정신과적 질환에 대한 두려움도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은 언제 들어도 황홀하다

 

얼마 전 주말에 지킬 앤 하이드라는 뮤지컬을 보았다. 젊은 의사 헨리 지킬은 조현병을 앓는 아버지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는 정신병원의 환자들을 위해 인간의 본성을 나눌 수 있는 약을 만들고자 한다. 시도는 성공하지만 본인이 피실험체가 되어 선과 악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인간에서 선악을 분리하거나, 정신과 신체, 감성과 이성, 의식과 무의식을 구분해서 보려는 것이 이원론적 시각이다. 보호병동에서 환자들은 본인의 병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고, 또 자신을 탐구하려는 노력을 하기 때문에 심리학 관련 서적이나 정신과 의사의 저서가 굉장히 많다. 그런 책들 중 우연히 만난 '행복해질 용기'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는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앞서 나온 이원론과 반대로 전체론, 즉 분할되지 않는 전체로서의 개인을 고찰한다. 이론이 굉장히 흥미롭고 기존에 내가 막연히 품던 생각과 완전히 달라 그 자리에서 책을 단숨에 얼마나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흥미롭게 읽은 사례로 다음 일화가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일 아침, 학교를 가야 하는데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학교를 가지 못하겠다고 한다. 보통 부모님들은 꾀병으로 진단을 내리며 억지로 씻기고 먹여 학교를 보낸다. 가끔 아이는 학교를 가지 않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곤 하는데, 신기하게도 엄마가 학교에 전화를 한 순간 굉장히 멀쩡한 모습을 보인다.(나도 그런 적이 있는 것 같다ㅎㅎ)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아이가 아침에 배가 아픈 것은 꾀병이 아니라 실제 증상이라 설명한다. 학교를 가지 않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동이 복통으로 이어진다는 거다. 떳떳이 학교를 가지 않게 된 순간, 더 이상 몸이 아플 필요가 없어질 뿐. 이처럼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전체로서의 개인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동을 탐구한다. 다른 예로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고, 소리를 지르려 '화'라는 감정이 일어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프로이트가 유아기 발달과정이나 다소 성적인 부분에 집중한 것과 달리, 아들러는 인간을 낙관적으로 보며, 인간의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에서 비롯된다는 대인관계를 주장하며 사회적 관심을 더욱 중요시 여겼다. 정신세계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겠냐마는 귀 담아 들을 이론인 것은 확실하다.

 


 

망상, 환각이 들리며 각종 음성증상(감퇴된 감정표현, 무의욕증)을 보이는 조현병 환자가 있다. 항정신병 약물을 몇 가지나 바꿔가면서도 눈 깜빡임, 입 마름과 같은 부작용만 심해지고 환각 증상에 개선이 크게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이런 점이 학생이 생각했을 때는 정신과 의사가 가장 곤혹스러울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침 증례 토론 시간에 교수님은 전공의 선생님께 해당 환자의 환청이 정확히 무엇이냐고 묻고, 환자에게 누구를 해하라는 식으로 위협이 되느냐고 물었다. 죽은 동생의 목소리가 자꾸 어디론가 가라고 하는 환청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계속해서 들리는 이유와 그 의미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셨다.

 

그렇다. 먼저 무엇이든지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이번 주에 가장 크게 배운 점이다. 감정이 나타난다면 어떤 감정일까? 무엇 때문에 그러한 감정이 떠올랐고 기저에는 어떤 또 다른 감정이 있을까? 사람들이 기억하는 첫 기억은 실제 기억이 아닐 확률이 크다고 한다. 기억은 감정들과 함께 프로세싱되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의문점이 자연스레 생긴다. 그렇다면 하필 왜 그것이 첫 기억인가? 첫 기억은 보통 1차 관계 형성자인 가족과 관계된 것이 가장 많다. 빛이 있기 때문에 그림자가 존재하듯, 좋은 기억은 나쁜 감정을 가리려 존재한다. 예를 들어 첫 기억이 즐겁게 아버지와 놀고 있는 기억이라면, 늘 바빴던 아버지의 빈자리에서 왔던 외로움을 덮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말을 끼워 맞춘 것 같기도 하지만 유리 같은 인간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듯하다.

 

보호병동의 환자뿐만 아니라, 정신과에 내원하는 분들은 우울, 불안과 같은 음성증상(보통사람에게 잘 나타나지 않는 증상)을 주소로 내원한다. 사실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감정은 누구나 알고 있는 감정인데 환자들은 본인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보호병동에서 집단치료를 하며 서로의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나누는 것의 가장 큰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비단 환자들뿐만 아니라 사람들 간에 대화가 중요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되고,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유독 더 피곤한 한 주였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가만히 누워 생각했다. 오늘 봤던 환자들과 한 이야기들, 그전에 막연히 상상했던 정신과의 이미지, 들었던 이야기들, 내가 평소 하던 생각들을 한데 모아 차근차근 정리해보려 했다.

 

우선 '정신'은 너무나도 넓고 우주와 같은 광활한 미지의 세계다. 정신과 관련된 문제는 사소하면서도 매우 심각한 것까지 그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것 같다. 주위 친구 중에서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었고, 무엇보다 나 또한 우울 삽화로 예전에 힘든 적이 있었다. 내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우울증 환자가 병원에 찾아온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기적이다.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이 들고 삶에 대한 흥미가 감소하는데 자의로 찾아오는 것은 치료에 있어서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와 심리상담사의 역할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물론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의 영향으로 정신과적 질환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감, 지지, 감정적 소통이 치료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는 처방과 별개로, 심리상담사와 마찬가지로 공감을 해주는 것을 넘어서서 어떤 점에서 차이를 보여주어야 할까?

 

양극성 장애 I형의 진단기준은 양극성이지만 우울 삽화 없이 조증 삽화(팽창된 자존심, 감소된 수면욕, 사고 비약과 더불어 그로 인한 사회적 기능 장애 등)가 한 번이라도 존재하면 진단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울 삽화 없이 조증 삽화만 존재하기는 사실상 무리가 있다. 이전의 병력과 더불어 환자의 이야기에서 우울 삽화를 찾아내어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것과 같은 일이 의사의 역할 중 하나다.

 

이번 주 가장 큰 소득은 사고방식의 전환 외에도 정신질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엄청나게 올라간 점이다. 당연하게도, 막연히 무서워하고 멀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다른 병실의 여느 환자와 다름이 없다는 거다. 멘탈이 약하다는 말을 우울증 환자들이나 재원기간이 오래된 환자들은 말한다. 들으며 혼자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소한 것 하나에도 깊이 감동할 수 있는, 그만큼 높은 감수성을 지닌 게 아닐까?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일들

 

Dopamine(도파민)은 뇌신경 세포의 흥분 전달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Dopmaine 수치가 올라가면 과흥분 상태임으로, 조현병 환자에게서 흔히 보이는 환각(환청, 환시), 망상장애가 관찰되게 된다. 반대로 수치가 내려가면 저자극 상태이므로, 파킨슨병과 같은 증상이 보이게 된다. 수치가 낮을 때는 L-Dopa와 같은 도파민 전구체를 투여한다. 높을 때는 주로 항정신병 약물을 일단 처방한 뒤, 수액 치료 등을 통해 배설을 시켜 수치가 내려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약 용량 조절에 실패했을 시 파킨슨증과 같은 추체외로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때는 다시 약 용량을 조금씩 줄이며 부작용 감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Serotonin(세로토닌)은 감정, 공격성, 각성, 수면, 강박과 관계된 신경전달물질이다. 수치 증가시 조증을 보이지만, 감소시 우울, 강박, 불면, 심하면 자살사고까지 나타난다. 감소시에는 주로 SSRI, 즉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사용해 세로토닌 수치를 올린다. 증가 시에는 역시 배설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GABA(γ-아미노부티르산)은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이다. '억제성'이니 수치가 높으면 편안한 마음이 들게 하고, 진정작용, 수면상태에 들게 한다. 반대로 낮으면 불안과 공포 증상, 경련, 헌팅턴병, 뇌전증까지 일으킬 수 있다. 너무 높아도, 지나치게 낮아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을 과다 복용하거나, 발작으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되겠다. GABA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Glutamate(글루탐산)와는 시소와 같은 관계이며, 글루탐산은 기억 및 신경세포의 사망과 관련이 있다. 자폐스펙트럼 아동은 높은 글루탐산 수치와 낮은 GABA 수치를 보이는, 특정 자극들에 과민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Ach(아세틸콜린)은 기억 및 학습에 관여하며, 감소시 알츠하이머 병을 포함한 치매(dementia)를 일으킨다. 알츠하이머 병에서는 따라서 AchE inhibitor를 사용해 Ach 수치를 조절한다. Norepi(노르에피네프린)은 각성, 공포, 스트레스와 관계되며 증가시에는 불안 등의 증상이 일어나며 감소시에는 우울, ADHD가 일어날 수 있다. 증가시에는 역시 신경전달물질의 재흡수를 억제하는 기전의 TCA나 SNRI를 쓸 수 있다.

 

 

#더 적고 싶었지만 적을 곳을 찾지 못한 이야기

 

우리는 항상 부모 세대보다 진화된 세대다. 그렇지 않은가. 부모의 DNA 모두를 받았으니까. 항상 자신감을 가지고 본인을 아껴주자.

 

누구든 거짓을 말했다면 화를 내거나 감정부터 앞세우지 말고 왜 그랬을까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하자. 그러고 난 뒤 거짓을 말한 사실에 대해 수용(Acceptance)할지, 직면(Confrontation)을 시킬지 선택하자.

 

특히 육아에서 조건적으로 긍정적인 태도(Conditioned positive regard)는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을 잘했기 때문에 상을 주는 방식은 아이의 이후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보다는 진심으로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해를 하려는 노력이 더욱 바람직하다.  

 

읽어볼 만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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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 환자에 대한 편견의 역사와 문제점(1)

1. 편견이란 무엇인가? 1) 편견과 정견 편견(偏見, prejudice)이란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치 못한 생각”(우리말 국어사전)이다. 긍정적인 편견도 편견이지만 대개 부정적인 견해를 편견이라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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