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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일기

수술방은 처음이라

by 절실한 사람 2020. 5. 24.

바둑의 고수들에게 입문 과정을 얘기해 달라고 하면 대부분 어깨너머로 배웠다고 말한다. 바둑 천재로 불리는 이창호 역시 기력 10급의 할아버지께서 벌이던 대국을 보면서 처음 바둑을 접했다고 한다. 오랜 관전을 통해 검은 돌과 흰 돌이 교차하며 승부를 가르는 반상을 읽는 수를 익혔다는 것이다.

 


 

수술방의 차가운 공기는 이곳이 바깥과 철저하게 분리된 공간임을 늘 상기시켜준다. 인턴과 간호사들, 집도의의 일사불란한 태도와, 각종 수술도구들이 근육, 지방을 자르고 피를 지혈하면서 나는 냄새는 나를 마치 저 멀리 우주로 데려다 놓은 듯했다. 실습학생들은 의사나 간호사가 쓰는 파란 모자를 쓰지 않고, 노란 모자를 쓰게 되어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은 그걸 보더니 마치 병아리 같다며 웃으셨다.

 

외과 실습과 내과 실습의 가장 큰 차이점은 수술 참관 여부이다. 하루의 첫 수술(이니셜)은 보통 오전 8시에 시작하는데, 환자 준비시간과 마취시간이 보통 30분 정도 걸리므로 8시 30분부터 수술을 참관하게 된다. 학생이 수술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당연히 많지 않다. 보통 두 명 중 한 명은 스크럽(수술 보조)을 하게 되는데, 실제 수술 필드 가까이에서 수술 과정을 아주 자세하게 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처음으로 본 수술은 TORT, 즉 transoral robotic thyroidectomy였다. 갑상선 수술은 보통 open으로, 그러니까 목 아래 부위 피부를 절개해 곧바로 갑상선을 꺼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방법은 통증이 심하고 목에 긴 흉터가 생긴다는 큰 단점이 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한 방법이 바로 TORT인데, 수술 과정은 간단하지만 다소 지켜보기 힘들다는 점이 특징이다.(정 궁금하면 위에 밑줄 친 영어 부분을 구글에다 이미지 검색해보는 것을 권한다...)

 

먼저 갑상선이 있는 목 부위의 피하까지 구멍을 구강의 왼쪽, 중간, 오른쪽을 통해 뚫은 후, 겨드랑이 쪽에도 구멍을 하나 낸다. 그렇게 생긴 2.5cm 미만의 4개 구멍에 다빈치라는 로봇 기구를 삽입하여 수술은 이루어진다. 수술 의사는 조종간인 인체공학적 서전 콘솔(surgeon console - 의사가 로봇을 조종하는 곳인데 사람 손과 유사한 로봇 팔을 조종하여 정교한 수술이 가능하다.)에 앉아 수술을 집도하게 되며, 다빈치의 정밀도는 포도를 수술할 수 있을 만큼 높다고 한다.

 

 

어깨너머 배운다는 표현이 딱 맞는 곳이었다.


TORT 같은 수술 말고 직접 환부를 열어서 하는 수술 같은 경우는 실습학생이 볼 수 있는 시야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발판을 딛고 올라서서라도 수술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렇게 수술을 지켜보다 보면 교수님이 해당 수술에서 조심해야 하는 해부학적 구조물(예를 들면 갑상선 수술 중 되돌이후두신경을 손상시키면 쉰 목소리가 나게 된다거나 유방 절제술을 할 때에 긴가슴신경을 주의하지 않으면 어깨뼈가 날개 모양으로 솟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질문을 하시기도 한다.

 

유방이든 갑상선이든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 병원에 오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건강검진 상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정밀 검사 중에 수술을 결정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보통 몸에 덩이가 만져지기 때문이 가장 많다. 환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은 단연 하나다. 

 

과연 지금 만져지는 이것이 암과 관련이 있을까.

 

유방 덩이의 경우, 20대에서 50대 여성에서, 90% 이상은 유방 낭종, 섬유선종, 섬유낭성 변화와 같은 양성 유방질환이다. 만에 하나 10% 미만의 확률로 악성이 의심이 된다면 빠른 처치가 필요하므로 일단 양성과 악성 질환을 구분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양성 질환과 구분되는 악성 질환의 가장 큰 특징은 종괴가 빨리 자라며, 피부가 땅겨지며 고정된 느낌이 들면서 만졌을 때 매끈하기보다는 울퉁불퉁하다는 점 등이 있겠다. 유방에 덩이가 만져진다면 이런 점들 뿐만 아니라 영상의학적 소견, 병리학적 소견을 종합하여 지켜보며 약물치료를 할지, 유방보존술을 할지, 겨드랑 림프절 곽청술을 포함한 유방 절제술까지 할지 고려하게 된다.

 

우리나라 암 발병률 1위를 차지하는 갑상선암의 경우에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갑상선암의 경우에는 다른 곳에 전이가 되지 않았다면, 그 외 신체부위의 암처럼 그 부분만 방사선 치료를 한다거나, 전신 항암요법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는다. 대신, 반쪽 갑상샘 절제술이나 근전절제술, 전절제술을 할지 종괴의 크기나 영상, 병리 소견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결정한다.

 

아무래도 수술이 낯설고, 장시간 서 있어야 하며 비정상적인 자극(피와 같은 시각적인 자극, 살이 타는 냄새 등)을 오래 받다 보니 친구가 미주신경 반사성 실신(부교감 신경인 미주신경의 흥분에 의해 혈압이 하강함으로써 유발)으로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 이럴 때는 일단 머리가 아래로 가게 눕히고 수분을 보충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대문사진에 나오는 것 같이 유리를 통해 수술을 지켜보지는 않는다. 사진은 미드 Grey's Anatomy. 미국은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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