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즈음에 말에는 이상한 힘이 있어서, 입 속으로 되뇌기만 하던 말도 내뱉고 나면 한층 더 그 힘이 공고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릴 적부터 나는 차마 내뱉지 못하고 뒤로 기꺼이 삼킨 말들이 많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내게는 오직 끈기만이 남았다. 어릴 적 나는 수학을 좋아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으니 아름다운 것이라 했었나. 잘하지는 못했으나 그런 까닭에 더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똑 부러지는 학문에 뜻을 둔다면, 나도 어쩌면 매사에 논리적이고 그럴듯한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의학은 그러한 이유 아래에서라면 어떻게 보아도 더할 나위가 없어 보였다.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직접 마주한 의학은 수학보다는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담보로 한 경제학에 가까웠다. 한가운데서 방향을 잃은 나는 파도를 만.. 2020. 5. 2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