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끄적임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by 절실한 사람 2020. 1. 3.

책 <남자로 산다는 것 > 서평

 

 

우선,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아버지가 된 사람들과 언젠가 아버지가 될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쓴다. 나아가서는 주변 남성을 이해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의학을 공부하다 보면 대개 65세 이상을 elderly, 즉 노인으로 정의한다. 물론 기타 다른 건강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가이드라인 상으로 고령 환자에 해당이 되면 우선 치료나 향후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똑같이 무릎에 관절염이 심하게 있어도 58세 남자 환자와 아스피린을 복용 중인 86세 여자 환자의 치료는 당연히 다르다.

 

58세 남자 환자라면 TKR(슬관절 치환술)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심장 문제 때문에 아스피린을 복용 중인 86세 여자 환자는 출혈 위험성과 나이 때문에 수술보다는 가벼운 산책이나 수영, 자전거 타기와 같이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는 운동으로 체중감량을 하는 방향을 선호한다.

 

그런데 사회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그 기준도 65세가 적당한가, 그에 따라 활발한 사회활동을 시작해야 할 시기인 20대나 30대가 할 역할이 과연 줄어드는가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결론짓기 어려운 문제다. (https://ppss.kr/archives/163929 - 청년실업 문제,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60대는 취업 준비 중인 30대의 아버지이고, 40대는 부양해야 할 70대가 있다. 어쩌면 70대라도 부양해야 할 40대 아들과 100살 남짓한 아버지가 있을 수도 있고.

 

어쨌든, 인생에서 노년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자연스레 증가함에 따라 노년기 우울의 위험성은 반드시 커진다. 노년기 우울은 남성보다는 여성에서 그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고 배웠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 통계가 노년의 남성이 우울을 정말 적게 겪는다는 뜻일까? 혹시 그렇게 느끼지만 그렇지 않은 척을 하시지는 않을까? 그리고 나아가서는 여기까지.

 

아버지는 우울할 때 과연 내게 그렇다고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마치 오래전 인상 깊게 본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몇 개만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집 안의 가구가 삐그덕 댄다. 변기가 막힌다. 나는 조심성 없게도 넘어져 다리에 생채기가 나고 보란 듯이 마구 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부르고 언제나 아버지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해낸다. 올려다본 아버지는 믿음직스럽고 강하고 굳세다.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버팀목이자 어떤 식으로든 그 자리에 언제까지나 서 있다.

 

아버지는 집에 없는 시간이 더 많았다. 어린 기억이지만 자주 술에 얼큰하게 절여진 채 자정을 넘기고서야 집에 들어오시곤 했다.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 늦게 집에 들어오셔서 곤히 자던 내 볼에 당신의 뺨과 알코올 그리고 한숨이 가득한 숨을 비비셨고, 나는 칭얼거리면서도 품에 안겼다. 가끔 일찍 들어오시는 날 나는 아버지의 손에 든 치킨을 보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고, 아버지는 애가 잘 시간인데 왜 이런 걸 사 오느냐는 엄마의 타박을 뒤로 한 채 닭다리를 맛있게 뜯는 나를 보고 흐뭇해했을 거다. 보지 않았어도 나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이제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집에 가끔 갈 때마다 당신의 서재에서 시간을 주로 보내고 계신다.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던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글을 쓰신다. 어머니와 시간을 더 많이 보내며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고 기타를 배우신다. 그렇지만 내가 집에 갈 때마다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어머니와 말다툼을 자주 하신다. 기타를 쥐었다가도 금방 내려놓는다는 엄마의 말을 전화로 듣는다. 거실에 있으시기보다는 방에서 잘 나오시지 않으신다. 아버지는, 아니 아빠는 아무래도 고민이 분명 있어 보인다.

 

아빠에게 있어서 자기 삶은 무엇이었을까

 

 


 

학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메타인지'다. 공부를 할 때 내가 뭘 모르고, 무엇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지 아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게 먼저 되어야 부족한 부분을 채울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잘못이라면 사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산 것밖에 없을 거다.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 같은, 아버지에게 본인을 위한 시간은 분명 더 생긴 것 같은데 왜 본가에 갈 때마다 오히려 여유로워 보이지 않으신지 책에서 조금이라도 답을 찾고 싶었다.


1992년 4월 필라델피아 융 심리학 센터에서 강연한 내용을 토대로 쓰였다. 남성의 보편적인 문제를 여덟 가지로 풀어 해석했으며, 치료로는 일곱 가지를 제시한다. 책은 민족이나 인류에게 유전적으로 계승되는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쉽게 쓰자면 이렇다. 문화와 지역마다 그 특유의 구성 요소가 존재하지만, 통과의례의 원형에 나타는 단계는 놀랍도록 서로 닮았다는 거다. 온전히 인간이 만든 개념인 '경제'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아이를 '본능'과 분리하려면, 적어도 무의식으로 돌아가려는 욕구만큼이나 강력하고 신비한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런 통과의례들은 모두 정교하며 혹독할 수밖에 없다. (통과의례에서 행하는 신체 훼손은 할례, 요도 절개에서 생니를 뽑는 것까지 이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그런 통과의례를 겪은 적이 없고, 누군가 가르쳐 준 적도 없다. 의미 있는 의례가 없이, 깊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 속에 깊은 상처를 그대로 지니고 산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역할이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실제로 절대 그렇지 않음에도) 매우 크게 다가온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울어야 된다느니, 말을 많이 하면 안 되고 티 나게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느니, 남자답게 양보할 줄 알아야지와 같은 말들은 영혼을 그 시작부터 외부의 이미지로 채우고 마는 안타까운 상황을 만든다. (여자애가 ~~ 해야지. 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해석된다.)

 

아이는 태생부터 취약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초적으로 분리불안이 발생하며 이는 피할 수 없이 평생에 걸쳐 영향을 끼친다. 이제 다시 '어머니'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외부의 인물이나 사회제도, 이데올로기나 종교와의 관계를 통해 그 대체물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세상의 시작 그리고 사회에서 대체물을 찾는 과정 모두에서 일반화된 불안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여성에 대한 여러 가지 불특정한 공포로 바뀐다.

 

상처 입고 상실을 언제 겪을지 모른다는 남성의 공포는 '콤플렉스'의 형태를 거쳐 외부환경에 표현된다. 자신 안의 여성성을 두려워한 나머지 언제나 여성을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하거나, 혹은 '어머니'를 행복하게 하는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자신의 안녕을 저버리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래 예시에 아주 잘 드러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고스란히 자기 몫이 되어버린 한 남성 내담자가 있다. 어머니가 결혼생활까지 간섭하며 사생활에 개입하자, 그는 분노를 뜬금없이 아내에게 돌려 어머니가 가장 힘들 때 무신경했다고 비난을 퍼붓는다. 이런 식의 감정 분출이 겉으로는 상황에 과잉 반응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지만, 당연히 사실은 평생 쌓아온 공포와 분노의 표현이었다. 내담자는 콤플렉스를 직면하는 대신 자신의 고통을 아내 탓으로 돌리는 길을 택했다. 이 남성은 심리학적으로 전혀 독립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오늘날 남성이 겪는 상처는 절대 상징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남성은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일을 하도록 요구받으며,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과 기대가 불러오는 중압감과 무기력에 안팎으로 시달린다. 일곱 가지 치료 중 가장 인상 깊은 한 가지만 꼽아 보겠다. 남자들은 '조용한 절망의 삶'으로 대표되는 암묵적인 침묵을 강요받는다.

 

우연히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실은 부족하다고 느끼며, 공포와 분노 사이에서 고통받는다는 것, 감정적으로 남에게 의존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치료의 시작이다.  

 

 

삶을 이끄는 무의식의 힘, 사회제도, 그리고 이데올로기에는 관성이 있기 때문에 사회와 성역할에 급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변화의 첫 번째 조건은 남성 자신이 심각하게 상처 입은 상태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남성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의식하지 못한다면 남성들 자신은 물론 여성들까지 되풀이해서 상처 입히게 된다.

어째서 여성이 자신을 억압하는 남성을 증오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와 거의 똑같은 정도로 어째서 남성이 서로 증오하고 두려워하게 되는지를 놓고 나는 골똘히 생각에 빠지곤 한다.

 

 

마지막 챕터는 책의 많은 부분을 인용하였습니다. 출판사 더퀘스트의 서평 이벤트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책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479333

 

남자로 산다는 것

융 심리학으로 보는 남성의 삶과 그림자!융 심리학자 제임스 홀리스의 『남자로 산다는 것』.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성 대다수는 한 사람의 남성으로 정의되는 데 필요한 것들, 즉 남성이라는 역할과 기대, 경쟁과 적개심, 자질이나 역량에 대한 평가 등의 압박을 받으며 살아간다. 저자는 남성을 평생 따라다니는 짐이자 부담 거리를 새턴(토성)의 그림자에 비유한다. 타락한 권력에 고통 받고 두려움에 쫓기며 자신도 모자라 타인까지 상처 입히면서, 모두가 공범이 되어

book.naver.com

 

 

# 어머니에게 썼던 글

https://brunch.co.kr/@tdo02134/46

 

01화 어른 즈음에

뒤늦게 쓰는 편지 | 말에는 이상한 힘이 있어서, 입 속으로 되뇌기만 하던 말도 내뱉고 나면 한층 더 그 힘이 공고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릴 적부터 나는 차마 내뱉지 못하고 뒤로 기꺼이 삼킨 말들이 많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내게는 오직 끈기만이 남았다. 어릴 적 나는 수학을 좋아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으니 아름다운 것이라 했었나. 잘하지는 못했으나 그런 까닭에 더 열

brunch.co.kr

 

'끄적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세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0) 2020.04.07
'정의란 무엇인가' 짧게 읽기  (0) 2020.01.06
부자가 되고 싶다면  (0) 2020.01.03
저는 이제 책을 읽겠습니다.  (0) 2020.01.03
울릉 기행  (0) 2020.01.03

댓글